2010년 3월 12일 금요일

치한으로 몰리다...

이제 입영희망원도 냈겠다, 1학년도 지났겠다 이제는 동아리일도, 학과공부도 좀 뒤로 미루고, 책도 좀 읽고,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준다고, 1학년때 그렇게 애정을 쏟아부었던 동아리일이 잘 안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다시 동아리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 한 학기를 동아리일에 매달리면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1992년 여름방학.
이번에는 좀 색다른 일을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신축아파트에 싱크대 설치하기, 신축아프트에 창문 달기, 신발공장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과외도 잠시.
군대가기 전 마지막 방학이다 싶으면서도, 내심 내년 봄에 입대영장이 나오면, 입대전 방학을 한 번 더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로 했었다.

그리고, 1992년 2학기 개학.
이제는 진짜 모든 일에 손을 떼고, 입대전에 여행도 좀 많이 다니고, 책도 좀 읽어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시내 서점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후배녀석과 여행가자는 약속도 잡아 놓은 상태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입대영장을 받기 전 주 수요일이었다. 날짜는 1992년 9월 9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기 위해 학교통학버스를 탔다. 통학버스는 구조가 좌석버스와 똑같다. 양쪽 창문쪽으로 좌석이 두 개씩 있고, 통로는 한 사람이 서 있기에 적당한 그런 구조.
역시나 많은 학생들이 차에 탔고, 앉은 학생도 있고, 서 있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서 있었는데, 가방은 짐칸에 올려놓고, 두 손은 짐칸을 잡고 있었다. 학생이 많이 타서 통로에 서 있는 학생들은 모두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렇게 서 있을 경우 통로에는 두 사람이 등을 맞대는 형태로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버스가 한참을 달려가는데, 내 뒤에 서 있던 학생이, 그 때까지도 가만히 있더니만 갑자기 옆으로 살짝 빠지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나는 그 학생과 나의 등이 너무 붙어 있어서 그 학생이 불편해서 그런가보다라고만 생각하고, 나도 살짝 그 학생이 빠지는 반대 방향으로 빠져주었다. 조금 편해지긴 했다.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통학버스를 타고,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 가방을 챙겨서 내리려고 몸을 버스 출입구쪽으로  돌리려던 찰나.

앞에서 먼저 내리려던 여학생이 갑자기 내 발을 밟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냥 운동화가 아니라 하이힐의 그 뾰족한 부분으로.
나는 살짝 인상을 썼지만, 그 여학생이 모르고 그랬나 싶어, 아무말 안하고, 그냥 나가려는데, 그 여학생이 내 발을 한 번 더 밟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그냥 밟는 수준이 아니라, 내 발을 밟고는 담배불을 끄듯이 비벼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아팠다.

이건 분명 고의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머리끝까지 솓구쳤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그 여학생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나 : (인상쓰며) 이것 보세요. 왜 남의 발을 밟고 그러세요? 아파 죽겠구만.
그 여학생 : 그 쪽이 먼저 치근댔잖아요. 버스에서.

그러고는 같은 과 친구인지 남친인지가 그 여학생에게 그냥 가자고 그러니까 못 이기는 척 그냥 가버렸다.
(당시에는 성추행이니 뭐니 그런게 그렇게 안 퍼져 있던때라, 별 문제없이 그냥 넘어갔다.)

머라고라? 내가 치근댔다고라? 오메~

환장할 노릇이었다. 치근대다니? 내가? 왜?
위에서도 적었지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동안 내가 느꼈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때 딱 한 번 뿐이었다. 그것도, 나 때문에 불편해 하는 것 같아, 나도 살짝 비켜주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를 치근댔다고?

아침부터 정말 열불터지는 일이 터진 것이다.
당시 수요일은 수업이 거의 교양수업이라, 나는 분통이 터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업도 안 들어가고 동아리방엘 먼저 갔다.
동아리 방에서 탁자에 엎드렸다가, 똑바로 앉아서 씩씩대다가, 일어섰다가 앉았다가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동아리 동기들이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방으로 들어오면서, 나에게 왜 수업에 안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는 가슴이 터질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울분을 토하듯이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 여학생의 인상착의를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혹시 얘들이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인상착의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여학생들은 4학년 2학기나 되어야 파마를 하거나, 하이힐 같은 것을 신고 다녔고, 정장 비스무리 한 옷도 그 즈음에야 입고 다녔다.
그 문제의 여학생은 분명 4학년 같지는 않은데, 파마를 했고 하이힐을 신고, 정장 비스무리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나는 그 여학생의 인상착의를 기억할 수 있었다. 또 당시는 2학기초라 졸업사진 같은 것을 찍던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 눈에 띄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인상착의를 대충 설명하고 나니,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수근대기 시작했다.
'걔 아닌가? 그 왜 맨날 정장 입고 다닌다는 걔, 있잖아'
누구를 말하는 거지?
내가 키며, 얼굴 생김새 등을 좀 더 자세히 말하니, 그제서야 친구들이 '걔 맞네' 그러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에게서 사정을 들어보니, 그 여학생은 학교안에서도 좀 유명한 여학생이란다. 별로 잘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맨날 정장을 입고 다니고, 다른 남학생들 몇몇도 그 여학생한테 내가 당한것과 같은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크~ 그럼 정신병자란 말인가?

하여튼, 안 그래도 이제 곧 군대에 끌려가야된다는 생각때문에, 착잡해 죽겠는데, 아침부터 재수없는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치한으로 취급받았던 수요일이 지나가고, 금요일에는 잘 아는 후배녀석과 다음 주에 지리산에 놀러가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등반 경로와 서로 챙겨야 할 짐들을 정하고서.
곧 다가올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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