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14일 월요일.
이 날은 하루 종일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
보통은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집에 오더라도 아주 늦게 집에 왔는데, 이 날은 집 근처까지 운행하는 통학버스를 타고, 일찍 집으로 갔다.
왠지 저녁을 집에서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서 누나와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누나가 저녁을 먹다말고, 전화를 받는다.
누나 : '여보세요. 네 네.'
딱 여기까지 듣는데, 뭔가 불길한 에감이 엄습했다.
그 전화가 엄마한테서 온건 아니다. 누나는 엄마한테 존대말 안 한다.
친척분들이 전화를 하신거면, '여보세요' 다음에 분명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기 때문에, 친척한테서 온 전화도 아니다.
그렇다면, 모르는 사람한테서 온 전화라는 것. 누구지?
그리고, 이어지는 누나의 통화.
누나 : '여보세요. 네 네. 맞는데요. 있습니다. 잠깐만요.'
헉...뭐지?
지금 집에는 누나말고 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전화는 분명 나한테 온 전화다.
월요일 저녁. 친구들도 나한테 전화할 일이 없다. 내일이면 다시 볼거니까.
방학도 지났으니, 공사장 알바하라는 전화도 아니다.(방학이 되기 전에 가끔 예전에 일했던 공사장의 건설회사 과장이 일 하라고 전화가 오곤 했었다.)
그렇다면, 그 전화를 건 사람은 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누나로부터 건네 받았다.
상대방 : '배영호씨 되시죠?. 여시 동사무손데요. 오늘 배영호씨 집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어서 못 전해 줘서 지금 연락드리는 겁니다. 입대영장 나왔습니다. 내일 동사무소에서 찾아가세요.'
크~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입대일이 언제냐고 물었다. 9월 29일이란다. 앞으로 딱 2주남았다.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멍~하니, 습관적으로 밥을 떠서 얼굴쪽으로 들이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멍~하니...
잠시 후, 엄마가 오시고, 내일 입대영장 받으러 가야 된다고 말씀드리자, 엄마는 우리 아들이 벌써 군대가나 하시며 좋아하신다.(겉으로야 좋아하셨겠지만, 속으로야 그랬을까...)
난 내 방에 가서 그냥 방에 엎드려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냥 멍~
조금 있다가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랑 누나가 동생한테 니 행님 군대간단다라고 말씀하신다.
동생도 내 방으로 와서, 행님아 진짜가? 언제 가는데? 라고 묻는다.
나는, 내일 동사무소에 가서 입대영장 받아봐야 안다고만 말하며, 애써 외면한다.
동생이 씻고 저녁을 먹으러 큰 방에 간 사이 나는 내방에서 그만 나도 모르게 펑펑 울어버렸다.
꺼이꺼이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동생이 밥먹다 말고 내 방으로 와서 왜 그러냐고 묻는다.
한 5분? 10분? 그리 길게 울지는 않았다.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잠시 밖에 나갔다오신 엄마 눈가도 벌겋다. 엄마도 운 것이 틀림없다.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입대영장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은 한 2, 3개월 앞두고 영장이 나와서, 그 동안 여행도 다니고, 친척분들께 인사도 드리러 다녔다는데, 나는 겨우 2주? 누구 코에 갖다 붙이라꼬?
당장 내일부터 할 일을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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